[내가 믿는 부활-정양모]

1. 나의 종생

▲ 정양모 신부
생자필멸이라, 나는 분명히 죽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알 수 없다. 신묘년 내 나이 77세, 아버님이 88세로 어머님이 91세로 선종하셨으니 나는 앞으로 10여 년은 더 살 것 같다. 천식과 당뇨를 고질로 앓고 있으니 호흡이 곤란하거나 신장이 망가져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좋은 주치의들을 만나서 아직은 잘 버티고 있고, 아울러 예수와 다석에 푹 빠져 지내니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경제개발과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금수강산에 살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나처럼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을 겪은 노인에게는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상향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1961-70년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 유학하는 동안 단 한번도 조국에서 좋은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어쩌다 서양 친구들이 전해주는 조국 소식은 한결같이 우울하고 불길했다. 그런데 누구의 공덕인가 지금의 한겨레는 단군 이래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저 고맙고 은혜로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종교계와 교계로 눈길을 돌려보자. 한국 갤럽이 최근에 한국민의 종교 분포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불교 22%, 개신교 25%, 천주교 8%, 기타 종교와 무종교가 45%라고 한다. 우리 겨레는 한자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가 먹혀드는 유일한 민족이다. 종교 간에 긴장과 알력은 더러 있지만 종교 전쟁을 하지 않는 한겨레를 나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부 편협한 종교인들이 종교간의 평화를 방해하지만, 대체로 종교간의 관계가 원만한 모범국가가 우리나라다.

우리겨레는 서양선교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선비들이 중국에서 유입된 천주교 서적을 읽고 스스로 복음을 깨친 민족이다. 1970년대 이래 평신도 신학자들이 계속 나오고 이들이 뭉쳐 한님성서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 등을 이끌고 있다. 천주교 구조상 평신도가 활동하기 매우 힘든데도 한국 신도들이 애써 신학을 연구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으쓱하기도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들이야 말로 한국천주교회의 긍지요 큰 자산이다.

요즘 나는 세배드릴 어른이 없는 고령에 접어들었다. 이 아름다운 세기,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야 한다니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나. 아, 나는 늙었구나, 이 누구의 허물인가? 원조 아담의 허물? 그럴 리가 있나. 조화옹의 섭리지. 나는 심원 안병무(1922-1996)박사가 펴낸 <신학사상> 편집 기획위원으로 23년 동안 봉사하면서 박사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박사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았지만 완치되지 못하고 늘 병마와 싸우셨다. 언젠가 몹시 힘들어하시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당신은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하셨다. 나는 그러지 않았기에 내심 전율했다. 나는 예수님 보다는 배도 더 살았고 공자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인생은 찰나처럼 짧게 느껴진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는 우리 속담보다는,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서양속담이 내 심정을 더 잘 드러낸다.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1948)가 1936년에 쓴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주인공 신부가 숨을 거두면서 발설한 사세구를 나도 닮으면 좋겠다. “아무렴 어떤가, 세상만사 은총인 것을!”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든지 간에 아버님 어머님처럼 선종(善終)하기를 간구한다. 선하게 살다가 복된 죽음을 맞고 싶다(善生 福終)는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께로 돌아가고 싶다(歸天). 그리하여 천상병(1930-1993)시인의 노래를 읊고 싶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2. 나의 부활

나의 삶은 내가 직접 경험하는 영역이니 제법 알 수 있다. 나의 죽음은 타인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후 내세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내가 직접으로나 간접으로나 체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니까. 프랑스 가톨릭 작가 샤를 폐기(Charles Péguy 1873-1914)는 1914년 8월 3일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육군 중위로 참전하여 1914년 9월 5일 제1차 마른(Marne)전투에서 독일군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연락병이 치명상을 입은 소대장에게, 내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폐기의 대답이 더 없이 진솔하다. “매우 궁금하다!” 과연 생전 처음 가보는 천로역정이 더 아름다울까?

1) 예수 부활

나는 그리스도인인 까닭에 내세에 대한 궁금증만 품고 살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아빠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와도 인연을 맺고 산다. 예수부활에 관한 증언은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예수 발현사화와 빈무덤 사화 양식으로 기술되어 있고, 사도 바울로가 55년 경 에페소에서 쓴 고린토전서 15장 5-8절에는 예수발현목록양식으로 적혀 있는데, 이 목록부터 살펴보는 게 사리에 맞다. 부활하신 예수의 발현을 목격한 이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게파(수제자 베드로)
- 열두 제자들(실은 배신자 유다를 뺀 나머지 열한 제자들)
-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성령강림 때의 신앙체험: 사도 2, 1-13)
- 야고보(예수님의 아우)
- 사도들(열두 제자들과 기타 전도사들)
- 바울로(33-36년 사이에 예수 발현체험)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하여 직제자들은 예수발현을 보고 처음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 유령이 나타난 줄로 여겨서 몹시 놀랐을 따름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된 사형수가 우리 한겨레에게 자꾸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라. 혼백이 한이 맺힌 나머지 편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면서 “한 풀어 주어, 한 풀어 주어”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여겨 굿판을 벌렸을 것이다.

예수는 평생 독신이셨으니 몽달귀신이 되기 십상이요, 이스라엘 왕권을 탐낸 국사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되셨으니 원귀가 되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 원귀를 보는 줄로 여겼지만, 발현하신 예수의 설득에 힘입어 마침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부활신앙이 전통이었다(마카베오 후서 7,14; 다니엘 12,1-3). 이제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부활을 확신하고 온 지중해에 예수 부활 복음을 전파하는데 투신하여, 한 세기 안에 지중해 곳곳에 예수부활을 신봉하는 교회가 생겨났다.

2) 우리 부활

그리스도인, 무엇하는 사람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닮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은 팔자소관이 같다. 운명 공동체인 것이다. 예수처럼 경천애인에 헌신하다보면 밑지는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종생하기도 하겠지만, 약간은 바보스러운 그 삶이 실은 부활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고 그리스도인은 나날을 살아간다.

이런 논리에서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우들에게 단언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선포되고 있는데도 여러분 가운데에는 죽은자들의 부활이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부활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고린토전서 15,12-13). 사도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서, 현세의 몸이 부활의 몸으로 완전히 변모하리라고 답한다.

바울로는 종말에 몸(육신)이 부활한다고 보았다. 이는 유대인 바울로가 유대교 묵시문학에서 따온 사상이다. 다만, 유대교 묵시문학계에선 종말 내세를 현세의 연장처럼 여긴 데 비해서, 바울로는 종말 내세를 현세와는 질적으로 아주 달리 보았다는 게 차이점이라 하겠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바칠 때도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유한한 물질이라 쓸만큼 쓰면 폐품으로 변하고 결국 소멸된다. 그럼 몸이 부활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의 그 무엇이 부활한단 말일까? 우리가 몸을 지니고 이승을 살아가면서 이룩한 우리의 사람됨, 인간성, 인격, 인품을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신다고 보면 무방하겠다.

우리 인생의 가을걷이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됨됨이를 추수하신다고 봐도 되겠다. 그럼 사람됨, 인간성, 인격, 인품을 알곡처럼 영글게 하자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수께서 우리에게 시범을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이니 만큼 아무래도 사랑의 덕목을 가꾸어야 할 것이다. 사랑에 젖어야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사랑의 화신이신 예수께로 반갑게 다가갈 수 있지 않겠나. 이게 천당이지 천당이 따로 있겠나. 세상에서 늘 비정을 일삼았다면 자기 스스로 하느님,예수님에게서 물러설 것이다. 이게 지옥이지, 지옥이 따로 있겠나. 호주 원주민들의 값진 가르침이다. “사람이 저승 갈 때는 딸랑 사랑 성적표 한 장 들고 가지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 하나 틀린 것 없다.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평생 임종환자들을 돌보다가 2004년 8월 27일 미국 에리조나주에서 선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학(死學)을 정립한 분으로 유명하다. 그는 죽음의 다섯 단계 및 사후생에 관한 연구서를 펴냈다. 죽음의 다섯 단계란 사람들 절대 다수는 죽음을 맞으면 심리적으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전 세계에서, 죽었다고 판정 받았다가 되살아난 임사체험자 2만 명의 증언을 모아서 <死後生>(대화출판사 1996)을 써서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사람이 죽으면 생시에 자신이 사랑한 부모, 조부모, 친구 또는 수호천사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뵈러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 임종 어린이들에게는 흔히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는데 반해서, 개신교 임종 어린이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사례는 전무하다고 한다. 천주교는 마리아 신심을 가꾸는데 반해서 개신교는 성모님을 멀리한 까닭이다. 나는 천주교 신앙인으로서 성모송 후렴이 점점 더 다가온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퀴블러 로스 여사의 사세구를 소개한다. “나는 은하수로 춤추러 간다.”

요즘 나는 아미타 삼존 내영도(14세기, 국보 218, 비단에 채색, 호암미술관 소장)를 눈여겨보곤 한다. 아미타여래가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거느리고 망자를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한 아름다운 그림이다. 나는 아미타 삼존 내영도를 보면서 삼존의 자애로운 모습에 미소 짓곤 한다. 그리고 내 목에 숨이 다하면 하느님, 예수님, 성모님 삼존이 나를 맞으실 정겨운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삼존은 그 이름만 다를 뿐 그 내세관은 다르지 않다고 확신한다.

이 단락을 마무리하면서, 우리나라 우리시대의 빼어난 가톨릭 시인 구상(1919-2004)이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쓴 신앙시 한 편을 소개한다(<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홍성사, 2002, 130-131쪽).

병상에서 내다보이는
잿빛 하늘이 저승처럼
멀고도 가깝다.

돌이켜 보아야
팔십을 눈앞에 둔 한평생
승(僧)도 속(俗)도 못 되고
마치 옛 변기에 앉은
엉거추춤한 자세로 살아왔다.

이제 허둥대 보았자
부질없는 노릇…

어느 호스피스 여의사의
“걱정마세요. 사람도 죽으면
마치 털벌레가 나비가 되듯
영혼의 날개를 펼칠 것이니까요”
라는 말이 저으기 위안이 된다.

병실 창문으로
오직 보이는 저 하늘,

무한히 높고 넓고 깊은
그 속이나 아니면 그것도 넘어서
그 어딘가에 있을
영원의 동산엘

털벌레처럼 육신의 허물을 벗어놓고
영혼의 나비가 되어 찾아들 양이면
내가 그렇듯 믿고 바라고 기리던
그 님을 뵈옵게 됨은 물론이려니와

내가 그렇듯 그리고 보고지고 하던
어머니, 아버지, 형, 먼저 간 두 아들과 아내
또한 다정했던 벗과 이웃들을 만나서
반기고 기쁨을 나눌 것을 떠올리니

이승을 하직한다는 게
그닥 섭섭하지만은 않구나… (이하 생략).

3. 다석의 부활관

예수 다음으로 나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분은 다석이다. 이제부터 다석의 부활관을 살펴본다. 한겨레의 성현 다석 유영모 (多夕 柳永模 1890-1981)는 20년 동안 쓴 <다석일지>(1955.4.26-1974.10.18)에 신앙시조 1792수, 한시 약 1300수를 남겼다. 이 가운데서 예수 부활 또는 우리 부활을 기리는 시편 여섯 수를 가려 소개한다. 다석에 따르면 부활은 하느님을 만나서 임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이다(與空配享).

다석일지 1956년 8월 28일(二) 

믿나이다(로마서 4,17)
있다가도 없는 듯 가고
없다가도 있는 듯 오는도다.
하느님께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도다
아멘, 죽은자들을 다시 살리실 줄 믿나이다. 

< 풀이 >
로마서 4장 17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시조 아브라함의 고사를 상기시키는 구절이다. 그의 나이 1백 세 때, 사라의 나이 90세 때 하느님께서는 아들 이사악을 점지해 주셨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섬긴 하느님은 “없는 것을 불러내시어 있는 것으로 만드시는 하느님이시다”(로마 4,17). 아브라함으로부터 1천 8백여 년이 흘러 하느님께서는 비명횡사한 예수를 부활시키셨다. 다석은 이 시편에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의 구원능력을 노래했다.

다석일지 1957년 2월 26일(一) 

허공이신 하느님과 함께 짝지어 논다
나는 날 수 없는 몸, 땅에 붙어, 닫히고 매달린 몸,
이 몸에 묻힌 얼이 꿈틀거린다.
내가 마음을 맑게해서 하느님을 만나 날아오르면, 비로소 허공이신 하느님과 함께 있는 나를 알아보리라, 나는 마음으로 허공이신 하느님과 어울려 뵙고 위로 올라가서
내 분수대로 기쁘게 놀리라.
이 몸을 누리다가 끝에가선 눕게 되리라.
장차 나는 소요하는 삶을 누릴 것이다. 지금 이 몸은 세상에 있지만 나는 올라가 임과 놀리라. 

< 풀이 >
다석은 1957년 2월 17․19-20일에 한시〈여공배향〉(輿空配享) 7수를 빚은 데 이어 2월 26일에 시조〈빈탕한대 맞혀 노리를 읊었다. 그리고 1957년 3월 1일〈연경반 강의〉때 이 시조를 상론했다. 이 상론에 힘입어 위에서 보는 것처럼 윤문을 만들었다. 본문의 표현이 매우 난삽해서, 다석의 상론을 접하지 못했다면 윤문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조의 대의인즉, 마음과 얼로 하느님을 뵙고 함께 어울려서 기쁘게 놀이하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현세의 삶도 내세의 삶도 하느님과 어울려 사는 놀이라는 말씀이다.

다석일지 1959년 7월 10일 

마음만은 늘 떳떳하다
사람 살로 부활할까? 나이 다 먹으면 남는 것도 없다.
밝게 보고 맑은 마음은 비운 마음, 절로 비운 마음이다.
나이 먹고 남는 것은 덧없으나, 하느님께 돌아가는 마음만은 늘 떳떳하다.

< 풀이 >
다석은 육신이 부활한다는 사도신경 신조에 의문을 지닌 것 같다(1행). 육체가 사후에 소생해서 하느님께 가는 게 아니고 “늘 떳떳한 마음”이 하느님께 간다고 보았다(3행).

다석일지 1967년 5월 30일 

나의 믿음
땅아, 내가 이제 너의 먼지 흙 한줌을 입고하는 말이다.
내가 너를 벗어버리면 이 한줌 흙도 되돌아가 대지(몯돌)는
거룩하게 될 것이다.
예수여, 언니를 따라서
아빠께로 올라가겠나이다. 아멘. 

< 풀이 > 
사람의 몸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간다. 창세기의 말씀이다.
그러나 사람의 얼은 예수 언니를 따라서 아빠께로 간다.
다석은 1959년 8월 23일, 1966년 11월 16 시조에서도 예수를 옛말 용법에 따라서 언니라고 했다. 그 옛날 하느님 아빠가 예수의 무르익은 인품을 거두어가셨듯이, 우리의 인격도 잘 영글면 수확해 가실 것이다.
부활이 따로 있나, 이게 부활이지, 구원이 따로 있나, 이게 구원이지.

다석일지 1972년 11월 19일

우리님 그리스도가 최고다
예수(엄마)는 돌아가시어 우리의 등글이신
하느님 아빠의 아들이 되셨다.
죽기까지 먹고 싸는 세상에서 지내는 것을 참 삶이라 하겠는가?
예수(어먼이)는 돌아가시어 아주 멀어지셨다. 아빠의 외아들 그리스도 예수여.
돌아가신 셋째 날 두 제자가 예수 무덤 찾아갔고,
날이 저문 저녁 때 또 두 제자가 예수를 만났지만
예수(어먼이)는 이제 참 멀어지시어 만나도 몰라보네.
아버지 나라에 씨알 아들 하느님 아들로 (오르셨네).

< 풀이 >
다석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이렇게 읊은 것 같다. 다석은 여기서 처음으로 예수를 엄마․어머니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에 십자가에 처형되심으로써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사흘째 되던 4월 9일 일요일에 수제자 시몬 베드로와 애제자가 예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했으나 예수 부활을 믿지 않았다(요한 20,1-10), 같은 날 즈문 저녁 때 다른 두 제자가 엠마오 동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했지만 역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루가 24, 13-35).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승을 떠나 초월자, 곧 하느님의 아들이 되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을 넘어 영원자로, 공간을 넘어 편재자로, 일체의 한계를 넘어 무한자로 탈바꿈하셨다.

다석일지 1973년 8월 19일 

어머님이 그리워
예수는 부활하여 천상에서 어머니(하느님)를 뵈었다.
예수는 오묘한 생명을 지닌, 한 분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이시다.
예수는 말없이 하느님의 뜻을 자세히 밝힌 양이시라, 선하고 아름다우시다.
예수는 만물을 밝히셨으니, 소처럼 그 뜻이 참되시다. 

< 풀이 >
다석은 성모 마리아를 고디 영성(直立灵性)의 화신으로 보고 존경했다. 그래서 예수는 어머님을 그리워하신 나머지 천상에서 성모를 반갑게 만나셨으리라고 상상했으리라. 이는 자구적 풀이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풀이한다면 어머니를 하느님으로 보는 게 옳겠다. 다석은 1957년 2월 18일 일지에서 놀랍게도 하느님을 “어머니 마리아”라고 하였다. 그리고 1972년 11월 8일 일지에선 “소와 양을 모르고서는 어머니를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어머니는 하느님이시겠다. 다석은 예수를 양과 소에 비겼는데, 예루살렘 성전의 대표적인 제물이 양과 소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신 것 같다. 예수님의 일생과 종생은 양처럼 순하고 소처럼 우직하셨다는 뜻이겠다. 다석이 불교의 십우도를 연상하고 “소처럼 그 뜻이 참되시다”(牛眞旨)라고 하셨을까?

정양모 /신부. 다석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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