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마음과 손길이 만든 8년

2016년 1월, 안산정부합동분향소 입구에 불을 밝힌 노란 리본 조형물. 이후 만 8년 안산시 단원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실 앞을 밝히고 있다.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세운 리본 조형물은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지역인데도, 분향소 외에 추모물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의 십시일반이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도 없이 제각각이지만 세월호를 기억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돼 있었어요. 기억과 싸움의 구심점이 광화문을 비롯한 서울이다 보니, 사람들이 안산에 와도 분향소 잠깐 들렀다가 가게 되는 거죠. 당시는 가족들 대기소나 임시 사무실이 지금 단원구청 앞이 아니었는데, 가족들이 밤새 조를 나눠서 당직을 섰거든요. 가족들에게 누군가 계속 옆에 있다는 것, 불을 밝히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었어요.”

안산 시민이었고, 딸의 선후배가 참사 희생자였던 이은진 씨는 “그런 마음이었다. 거창한 어떤 사업의 시작이 아니라, 2015년 10월쯤, 술집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번개를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뭐라도 하자”는 말이 구체화되면서, 정말 뭔가가 이뤄졌다. 누구는 설계를, 누구는 설비를, 누군가는 골조와 테이핑을 누군가는 모금 실무를 맡았다. 가장 조심스러웠던 것은 모금이었는데, 그야말로 순수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일이 돈 때문에 얼룩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 모양 바닥 조형 위에 노란 리본을 세워 만든 별리본은 올해 10주기를 맞아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보수 작업과 청소를 해 왔지만 10년 가까운 세월을 지나오니 유지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

2021년 별리본 대청소의 날. (사진 제공 = 송창욱)
2021년 별리본 대청소의 날. (사진 제공 = 송창욱)

그간 제작은 물론 유지, 보수도 대부분 자원봉사와 자발적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관련된 일을 하는 세월호 가족들도 동참했다. 이번 보수작업 역시 그렇게 진행됐지만, 규모가 커진 탓에 6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산출됐다.

이은진 씨는 “그동안 이 별리본에 어떤 식으로든 보탬이 되어 준 이들은 2000여 명은 될 것이다. 물론 중복된 수가 있겠어도 2000번 이상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며, “이 별리본은 사실 안산 생명안전공원이 완성될 때까지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약없이 10년을 오게 될지 몰랐다”며, 정말 작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에 지금은 많은 책임감, 함께해 준 이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별리본이 처음부터 지금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협의회 자리를 단원구청 앞으로 옮기면서 별리본도 옮겨야 했는데, 그 과정은 '무모한 대장정'이었다.

“규모가 있으니 차로 옮길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친구에게 부탁해 군장비로 옮길까도 생각했었고, 별 생각을 다 했죠. 거리가 1킬로미터 남짓이었는데, 결국은 조형물 아래 달린 작은 바퀴만 믿고 사람들이 밀어서 옮겼어요. 바퀴가 달렸지만 이동을 위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그게 최선이었어요. 아주 작은 턱이나 도로 상태, 내리막길이 큰 장애였지만 무사히 옮겼어요”

옮기는 길에는 70살이 된 이도 힘을 더했고, 경찰은 신호를 잡아 줬다. 지성 아빠 문종택 씨는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평소에는 인식도 못하는 턱에 그 큰 구조물이 덜컥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어찌보면 무모하고 원초적인 일, 사람의 손으로 밀어 더디지만 가야 할 자리에 도달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세월호 기억의 여정이었고, 나중에는 가장 신나는 기억의 하나이기도 했다.

2016년 별리본이 제작될 당시. 처음 만들어진 별리본은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서 밤새 아이들을 지킨 부모들과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송창욱)
2016년 별리본이 제작될 당시. 처음 만들어진 별리본은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서 밤새 아이들을 지킨 부모들과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송창욱)

이은진 씨는 스스로 말하길 “안산에 산다는 이유로”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계좌를 트는 일을 맡고 있지만 “이 일은 함께하는 모두가 주체”라고 했다. 

2019년 별리본 보수를 할 때부터는 그동안 함께 지켜준 이들과 ‘점등식’이라는 자리를 마련했다. 보수작업 뒤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며, 앞으로의 길을 도모하는 자리로 작은 공연을 연 것이다. 이 공연 역시 노래, 음향, 섭외 등 대가 없는 나눔의 자리다.

올해 10주기를 위한 별리본 보수 작업과 점등식도 그렇게 이뤄졌다.

3월 23일, 별리본 앞에서 펼친 공연에서 음향회사 대표, 이은진 씨가 일하는 카페에서 공연하다 이끌려 온 가수, 416합창단, 성호의 성당을 지었던 최봉수 대목장의 딸 최양다음, 몹쓸밴드, 극단 종이로만든배 등이 각자의 재능과 역할을 기꺼이 나눴고 기억을 되살렸다.

그리고 공연 이틀 전, 모자라던 200여만 원도 채워졌다.

별리본은 안산 416생명안전공원 완공 때까지 가족들의 곁을 지킬 예정이다. 세월호 가족들의 염원 중 하나인 416생명안전공원은 10주기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부지만 있을 뿐 구체적 공사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별리본의 쓰임이 언제 어디서 멈출지 모르지만, 애초 목적대로 가족들의 소원 하나가 이뤄질 때까지는 불을 밝힐 것이다. 

올해 점등식은 10주기 추모 공연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416합창단이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송창욱)
올해 점등식은 10주기 추모 공연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는 416합창단이 함께했다. (사진 제공 = 송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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