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파레노의 '보이스' 전시

국제 미술계의 가장 독창적 예술가 중 한 사람,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의 '보이스(VOICES)' 전시가 리움미술관에서 7월 7일까지 열린다. 다양한 신매체와 첨단기기를 도입해 시간과 경험, 실제와 가상, 관객과 예술의 상호작용을 구현하고 그 전시 경험을 다시 전달하는 유기적 형식인 이번 전시 역시 매우 독창적이다.

특히 전시장 안팎의 포스터, 사진, 조각,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는 데이터와 연동되어 인공지능과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기술을 통해 다학제 간 다양한 결의 ‘보이스(VOICES)’로 웅성거린다. 이러한 파레노 전시에서 그 중심이 되는 컨트롤 타워는 AI가 장착된 타워 모양의 야외 설치물 '막(膜)'이다. 마치 유기체인 우리 몸에 세포막이 있어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안팎을 긴밀하게 연결할 수 있는 것처럼 작품 ‘막’은 지상의 모든 환경 요소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미술관 내부로 전송한다. 이렇게 기온, 습도, 풍향, 소음, 진동 센서에 의해 유입된 데이터가 ‘미술관 안의 여러 상황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림 1) '막(膜)', 필립 파레노, 2024. (사진 제공 = 김연희)
(그림 1) '막(膜)', 필립 파레노, 2024. (사진 제공 = 김연희)

컨트롤 타워인 ‘막’에 의해 미술관 로비는 들어서마자 다양한 소리들이 합창을 한다.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외부 환경 데이터를 사운드로 전환하고 전시 공간에서 등장하는 다수의 목소리는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탄생한 작품이 된다. 이미 보도에서 많이 언급된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공지능을 통해 발화되는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다. 목소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실제하는 가상의 목소리로 새로운 언어인 '델타A(∂A)'를 배우며 성장하고 상호작용을 하며 전시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메인 전시장 M2 B1으로 들어서면 주황빛 공간에서 자연 채광이 느껴지는데, 석양 빛으로 물든 상태를 연출한 작품인 공간 전체에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중첩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공간에 부유하는 풍선 물고기가 관람객의 주변을 맴돌다 다가올 때 우리는 마치 큰 어항 속에 들어와 물고기의 구경거리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고기 풍선 역시 온도 센서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림 2)

(그림 2)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필립 파레노, 2022. (사진 제공 = 김연희)
(그림 2)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필립 파레노, 2022. (사진 제공 = 김연희)

미술관 안팎을 서로 연결하는 AI의 현실적인 환경적 요소는 전시장 안에 연주자 없이 들려오는 피아노 보이스에서 절정에 달한다. 자동 연주 피아노(Disklavier)를 전자센서에 연결하여 연주자가 밖에서 원격으로 연주하면 미술관 안에서도 실행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피아노 위에서 나무를 갈아 '인공 눈'을 뿌리면 시간과 함께 소복히 쌓인다. (그림3)

(그림 3) '여름 없는 한 해', 필립 파레노, 2024. (사진 제공 = 김연희)
(그림 3) '여름 없는 한 해', 필립 파레노, 2024. (사진 제공 = 김연희)

이렇게 시간과 함께 변화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은 얼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이다. 조금씩 녹아내린 눈사람은 결국 사라지고 나면 다시 가져다 놓기에 작품은 매번 달라진다. 반면 인공 눈으로 제작된 거대한 작품 '눈더미'는 익히 알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배신하고 가짜를 현실처럼 보이게 하는 전시를 경험하게 한다. 작품 '움직이는 조명등' 역시 외부에 설치된 '막(膜)'에서 받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임이 일어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다. M2 전시장 위층으로 들어서면 일본 만화 캐릭터인 '안리(Annlee)'가 화면에 등장하는데 여기 주인공 목소리도 역시 변형된 배두나의 보이스다.

시간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작품이 완성이 아닌 미완성 상태에서 관객과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외부의 센서는 미술관 밖의 상황을 감지하고 관객의 상황에 따라 미술관이라는 닫힌 공간의 틈을 타고 들어와 긴밀하게 소통을 한다. 기술 매체의 상황이 미술관 안의 상황을 결정하는 순간이 된 것이다.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는 키들러(Friedrich Kittler)의 이 발언은 그 내용보다 기술적 속성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경험을 제공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손에 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환경은 그 자체로 내용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시공간을 확장시키면서 사회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영화나 TV와 같은 한 방향 소통과 달리 수신자였던 우리가 송신자의 위치로 되돌아 갈 때, 관람자의 수동적 위치에서 작품의 완성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미술관 밖의 현실에서 상호작용하는 기술적 시스템을 반영하는 이번 '보이스(VOICES)' 전시 작품 사례들 역시 양방향 미디어에 영향을 주면서 서로의 버전이 되어 작동한다. 기술 매체 시대에 사는 현재,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은 별개 영역이 아니며 인공적 대상 그것들은 인간의 경험과 존재를 조건 짓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플라톤의 약국"(Platon Pharmacy, 1968)에서 소크라테스는 왕권을 대신하는 문서(문자)가 왕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될 때, 왕권 찬탈의 위험이 있으므로 이에 문자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 관계를 뒤집어서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원본의 존재가 아닌 그의 부재 시 대신하는 대리보충인 문자 때문(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문서(문자)’를 ‘기술매체’로 바꾸어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연희

홍익대학교 예술학 박사(미술 비평 Art Theory and Criticism ph.D)

미술 평론 및 대학에서 예술 이론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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