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산 주교, 주교로서는 용산에 두번 째로 방문해 성명서 발표
-용산 참사, 경찰특공대 투입으로 빚어진 비극적 사건이다

▲ 이날 성명서는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인 박정우 신부가 대독했다. (사진/고동주)

용산참사 발생한지 만 11개월, 성탄절을 일주일 앞둔 12월 18일 오전 11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최기산 주교가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여 희생자들을 위해 분향을 마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기산 주교는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만이 용산참사의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고 국민들이 용서와 화해, 일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라며 “정부가 성탄절 전,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용산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이어 "용산참사는 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는 세입자들의 항의를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어 진압하는 과정에 생긴 비극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규범에 정면으로 반하고 있는 재개발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었다. 또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정부는 용산참사 해결을 그 시작으로 제대로 된 개발관련 법제도의 정비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유족들이 안타깝게 주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고동주)

최기산 주교를 맞이한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한국천주교회가 유가족들과 함께 해 주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명했다.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내일모레면 11개월이다. 우리는 힘이 없지만, 신부님들이 있어서 지켜나간다. 항상 감사하다. 올해 안에 장례치를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했다. 고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씨는 “추운 날 주교님이 오셔서 감사하다. 매일같이 기도하는데 이렇게 주교님이 방문하셔서 용산학살 해결이 앞당겨질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고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씨는 “우리는 힘이 없다. 신부님들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이곳에서 함께 계셔서 그나마 분향소를 지킬 수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분향소에서 유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눈 최기산 주교는 올해 안에 용산참사가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기도한다면서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하며 조의금을 전달했다.

함께 배석한 이강서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빈민위원회위원장)는 "최기산주교가 용산참사현장을 방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의 공식입장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천주교 주교가 용산을 찾은 것은 지난 6월 3일, 김운회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의 방문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 최기산 주교가 분향소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고동주)

▲ 최기산 주교의 방문을 문정현 신부가 반갑게 맞이했다. (사진/고동주)

     @ 최기산 주교 용산 방문 동영상 http://mr.catholic.or.kr/ofmconv/video/bishop-jpic.wmv

 

국민이 흘린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부의 할 일입니다. 
- 용산참사의 빠른 해결을 촉구하며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야 58,10).

올해 초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관 한 분이 불에 타 숨진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러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철거민 다섯 분의 시신은 아직도 병원 영안실을 떠나지 못하고, 유족을 포함한 철거민 일곱 명은 심한 고통을 겪으며 이 겨울을 차가운 감옥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까워 뜻있는 종교인과 시민들이 날마다 참사현장에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고자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지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용산참사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 생업을 일구며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게 된 세입자들의 항의를 단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지금도 용산을 비롯하여 전국 이백여 곳에서 주민들의 생계와 공동체의 이익은 외면한 채 오로지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재개발 사업들이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오랫동안 그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던 가난한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난 서민들은 정부를 원망하며, 부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라고 비난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집과 땅은 투기의 대상이었고 재산 증식의 도구였습니다. 국가의 재개발 정책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부가가치를 소수의 토지와 가옥 소유주, 건설회사 등에게만 귀속시키는 현행 재개발 관련법과 제도, 관행들은 ‘적정한 소득의 분배’와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규범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법원도 이미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헌법재판소에 관련법에 대한 위헌제청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09년 6월 29일에 발표하신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한 인간 전체와 모든 인간을 포함하지 않는 발전은 참된 발전이 아닙니다.”(18항)라고 밝히시며 발전의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2004년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가 펴낸 「간추린 사회 교리?에서는 “전체 인류나 사회집단 등을 빈곤으로 내몰면서 인간을 희생시켜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 부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인간과 사회 전체에 연대라는 근본 덕목을 실천하도록”(332항)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발전의 형태가 과연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조금이라도 배려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는 국민을 힘으로 억누르기보다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국민의 처지를 헤아려 양보와 설득을 통해 최선의 대안들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정부는 용산참사의 해결을 그 시작으로 하여 제대로 된 개발관련 법제도의 정비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정부의 책무입니다.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만이 용산참사의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고 국민들이 용서와 화해, 일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정부는 힘없고 가난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하여 적극적인 중재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통합과 화해를 이루고,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을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성탄절 전,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2009년 12월 18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 기 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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