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

       지난 6월 15일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160여 명의 사제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오후 8시 용산참사 현장에서 비상시국미사를 열면서 <천주교사제 1,178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비상시국회의를 주선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인국 신부를 다음날 아침 용산에서 만났다. 마침 지난밤부터 무기한으로 단식기도에 들어간 전종훈 신부(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서울교구)와 송연홍 신부(전주교구), 강정근 신부(수원교구) 등이 천막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인국 신부와 나눈 인터뷰는 갤러리로 단장된 레아호프 2층에서 이뤄졌으며, 시국선언의 의미와 단식기도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 김인국 신부

이명박 대통령을 버리자

시국선언에서는 대통령이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제 국민이 해야 할 것은 대통령을 향한 애달픈 호소가 아니라 진짜 국가공동체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준비하는 일"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이에 김인국 신부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 이명박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것처럼 국민들의 소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호소하기보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차기 선거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그럴만한 희망의 조짐이 많다.

구약성경에서 에집트는 파라오의 고집 때문에 열가지 재앙을 불러들였다. 마찬기지로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학습 기회를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경쟁과 욕망을 찬미하면서 살았는데,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식의 경쟁과 성공 지향적 삶을 청산하고 공생공락의 삶의 방식을 회복해야 한다.

망할 것은 어차피 망할 것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세우려는 긍정적 전망이 필요하다. 절대로 조급하면 안 된다. 촛불이 켜진다고 조급히 뭔가 이루려고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었다고 당장에 뭘 해보려는 성급함을 보이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작년에 우리 국민들은 웃음을 통해, 올해는 눈물을 통해 의식이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다. 눈물은 웃음보다 열 배의 힘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고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분들, 그리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더욱 추모하자. 

어떻게 생각하면, 대통령의 퇴진조차 요구할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공권력 때문에 수세에 몰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국민들은 이명박 실체를 알아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더 근본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게 교회가 할 일이다. 

적을 알고 하는 싸움이기에 그 싸움이 이미 이긴 싸움이다. 그러니 너무 어둡고 슬픈 어조로 말하지 말고 밝고 환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울광장이 아니면 어떤가? 어디서든 다시 모이자

지난 15일 가톨릭사제들은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몇가지 행동지침도 함께 밝혔다. 이 결의에 따르면, △ 앞으로 한 달간 전국 각 성당에서 매일 민주주의의 회복과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 전국의 모든 신자들이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여 말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추모하는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 앞으로 매주 각 교구를 순회하며 우리 사회의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었다. 

"천인선언을 하고 행동지침을 마련하게 된 것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움직임에 합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 운동은 이제 생활 운동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들으라고, 구태어 서울광장에 모일 필요도 없다. 서울광장을 막으면 한강둔치에서 하고, 한강둔치 막으면 동네에서 시내 여기저기서 하면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명박 정부에게 들려줄 말이 없다. 이렇게 상대를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방에서 모여 대운하 문제, 용산문제를 거론해야 한다.  그게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를테면 성당에서는 매년 몇 차례씩 성지순례를 가는데, 시야를 넓혀서 신자들과 버스 대절해서 용산참사현장으로 순례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참상이 빚어진 현장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고통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성지가 아닌가. 일단 와서 보는 것과 언론에서 듣는 것과 느낌이 다를 것이다. 그렇게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실상 사제들보다 생활감각이 뛰어난 신자들은 용산에 와서 보고나면 유족과 철거민들에 대해 우리보다 더 공감하고 소화력이 클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러 명동까지 오는데, 명동 들러 가난한 이들이 죽어간 용산까지는 못 오는 게 교회의 한계다. 그러니 그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조성학 신부가 이런 말을 했다. 노무현은 다산 정약용이라고. 둘다 한국교회의 아들이다. 열린 사회를 꿈꾸었던 정약용을 죽인 세력이 노무현도 죽인 거다. 그런데 교회는 너무나 무감각하다. 적어도 노무현의 죽음과 용산 사람들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아야 한다." 

▲ 사흘째 단식하고 있는 송연홍 신부와 전종훈 신부

강부자의 '용역'이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사제들은 복음의 용역이 될 것이다

현재 몇몇 사제들이 용산 현장에서 단식기도에 돌입했다. 아직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용산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지금 용산 문제를 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는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방관하면 용산4구역에서 행해진 개발방식이 계속되어 약자의 것을 빼앗아 강자에게 주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지 용산 희생자와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요구를 그가 수용하면 현행 개발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지지세력들이 지지를 철회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은 그걸 두려워 한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은 일종의 '용역'이다. 사실 본인 스스로 정책결정권이 없는 이명박은  '강부자'들의 대행자라고 볼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제들은 복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의 상충문제이다. 이것은 대화와 타협으로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용산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용산문제에 지속적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진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사의 어떤 작은 계기로 인해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진실이 햇볕 가운데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자들이 양심선언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 도우심을 청하고 있다.    

대통령이 아니라 하느님께 탄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제들이 지금 여기에서 단식하는 까닭을 물었다.

단식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늘 말하듯 '떼쓰는 게' 아니다. 뭘 얻어내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떼 쓴다고 들어줄 사람도 아니다. 단식은 일차적으로 참회의 뜻이다. 억울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기도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 사제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이 아니라)하느님께 탄원하는 것이다.  5개월째 상복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탄원을 말로만 할 수 없어서 단식하면 그래도 정성이 될까, 해서 하는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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